빛과 그림자가 만드는 내러티브 || 엘르코리아 (ELLE KOREA)
DECOR

빛과 그림자가 만드는 내러티브

공간을 기반으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는 ‘바이아키텍쳐’ 대표 이병엽이 이야기하는 이상적인 집.

윤정훈 BY 윤정훈 2024.03.26
세종시 단독주택 ‘빌라 D’. 밀집된 주택단지에서 프라이버시와 채광을 블라인드와 버티컬 처마로 해결한 일명 ‘조리개 주택’이다. f값에 따라 집의 표정이 시시각각 달라진다.

세종시 단독주택 ‘빌라 D’. 밀집된 주택단지에서 프라이버시와 채광을 블라인드와 버티컬 처마로 해결한 일명 ‘조리개 주택’이다. f값에 따라 집의 표정이 시시각각 달라진다.

건축사사무소 ‘바이아키텍쳐’ 대표이자 공간을 기반으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어요. 얼마 전 세종문화회관에서 ‘밤참: 호랑이는 살아 있다’라는 팝업 소셜 다이닝을 선보인 게 화제였어요
예술감독으로서 행사 공동 기획과 공간 연출을 맡았어요. 멤버십 기반의 커뮤니티 살롱 ‘취향관’을 기획한 친구들과 함께했죠. 코로나19 이후 고정적 공간에 기반을 둔 커뮤니티에 한계를 느끼며 확장성을 모색하던 중 서울시 지원사업에 선정돼 열게 됐어요. 사전에 초대된 50여 명의 크리에이터들이 정체를 숨긴 채 타인과 대화하며 밤참을 즐기고, 함께 춤추고 노래하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BY ARCHITECTURE 빛과 그림자가 만드는 내러티브, 바이아키텍쳐 이병엽.

BY ARCHITECTURE 빛과 그림자가 만드는 내러티브, 바이아키텍쳐 이병엽.

예술 단체 ‘콜렉티브 에이’ 멤버로서 무대 연출과 공연 디렉팅을 맡아왔어요
대학생 때부터 현대무용을 좋아했어요. 전공은 건축이지만 그것만으로 표현의 한계가 많았죠. 무대 연출자로서 제 역할은 무대와 작품이 하나 되게 하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본래 ‘원형하는 몸 : Round 1’의 무대는 관객에게 둘러싸인 원이었어요. 곰곰이 생각하니 백스테이지가 없어 등장과 퇴장의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았죠. 그래서 부채꼴 형태에 양쪽에 거울 벽을 세운 무대를 제안했어요. 관객 입장에서는 원형처럼 느껴지길 바라면서요. 공연 연출은 건축에 비해 상상력을 무한히 확장할 수 있어 즐거운 작업이에요.
 
 
빌라 D 외관. 풍광을 고려해 1층 대신 2층에 거실을 배치한 민락동 단독주택 ‘빌라 탄(Villa Tan)’.

빌라 D 외관. 풍광을 고려해 1층 대신 2층에 거실을 배치한 민락동 단독주택 ‘빌라 탄(Villa Tan)’.

건축가로서 지향하는 건 무엇인가요
건축이 매력적인 이유는 물리적 공간에 보이지 않는 이야기가 가득하다는 겁니다. 건축가의 역할은 건물이 완성되면 끝이라고 생각하는데, 건축은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 없다고 봐요. 그 안에 누군가 들어가 살 때부터 건축 이야기가 시작돼요. 이러한 시간성과 미완결성, 가능성에 초점을 맞춰요.
 
 
 방향이 살짝 틀어진 트래버틴 석재 기둥과 천장의 곡선이 독특한 음영을 만들어낸다. 고요함과 무게감이 공존하는 빌라 탄의 외관.

방향이 살짝 틀어진 트래버틴 석재 기둥과 천장의 곡선이 독특한 음영을 만들어낸다. 고요함과 무게감이 공존하는 빌라 탄의 외관.

이상적인 집이란 무엇일까요
보편적 기준을 말하긴 어렵지만 주관적인 차원이라면 아침과 밤 동안 자유롭게 알몸으로 다니며 목욕과 사우나를 할 수 있는 곳입니다(웃음). 집은 단순한 시각적 결과물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들의 총합이에요. 미적인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자신의 집에 대해 얼마나 이야기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사무소의 방향성도 ‘어떤 디자인’보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탐색하는 데 중점을 둬요. 의뢰인에게도 같은 질문을 하죠. 자신의 인생 그래프부터 선호하는 공간을 구체적으로 기술하게 합니다. 누군가는 안정감을 느끼는 장소를 화장실로 생각할 수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카페처럼 익명성을 보장받는 공간을 떠올려요. 각자 느끼는 미묘한 감정을 공간설계에 반영합니다.
 
 
레드 트래버틴 석재를 중심으로 을지로 풍경에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디자인한 ‘을지로 와이너리’. 멤버십 살롱 ‘취향관’.

레드 트래버틴 석재를 중심으로 을지로 풍경에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디자인한 ‘을지로 와이너리’. 멤버십 살롱 ‘취향관’.

멤버십 살롱 ‘취향관'

멤버십 살롱 ‘취향관'

집을 개인의 브랜드로 나아가 수익화하는 일에도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사무소 운영 초창기에 집을 대상으로 재미있는 실험을 한 적 있어요. 1억 원 이내의 비용으로 서울 도심의 마당 있는 집에 살 수 있었죠. 수익보다 집을 영위하는 방안을 고민한 끝에 단독주택을 임대하고 리모델링해 1층은 부모님과 제가 사는 집, 2층은 외국인을 대상으로 ‘서울방학’이라는 스테이로 활용했습니다. 코로나19 직전까지 반응이 좋았고, 전 세계에 300명가량의 친구가 생겼죠. 집이 투자 수단을 넘어 제3의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후 집의 가치를 탐색하는 워크숍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어요. 바이아키텍쳐가 설계한 ‘혜담헌’의 건축주 역시 개인 관심사를 기반으로 집을 브랜딩해 다양한 활동과 수익 창출을 병행하고 있어요.
 
 
여수의 낡고 오래된 교회를 레너베이션한 ‘이하여백’ 프로젝트. 천창을 통해 깊게 드는 빛이 거친 질감의 벽과 만나 공간의 톤 앤 매너를 계속 바꾼다.

여수의 낡고 오래된 교회를 레너베이션한 ‘이하여백’ 프로젝트. 천창을 통해 깊게 드는 빛이 거친 질감의 벽과 만나 공간의 톤 앤 매너를 계속 바꾼다.

좋은 집이 갖춰야 할 비물질적 요소를 꼽는다면
빛과 그림자는 비물질이지만, 어떤 재료는 조형과 어떻게 만나는가에 따라 물질처럼 기능합니다. 그로 인해 공간 풍경이 시시각각 달라져요. 특히 집은 오래 머무는 공간이니 이런 변화에 관심을 기울이는 편입니다. 가령 기둥의 방향을 살짝 비틀거나 형태를 조금만 달리해도 공간에 드리우는 그림자가 달라지고 천장과 벽의 색감에 영향을 줍니다. 공간감도 일종의 유전자 같아요. 아파트처럼 층고나 구성이 정해진 곳에 돈을 쏟아부어 인테리어를 해도 좋은 공간감을 가진 집을 이기기 어렵습니다. 
 
 
세종문화회관 로비에서 열린 ‘밤참: 호랑이는 살아 있다’. 지속적인 커뮤니티로 연계할 예정이다.

세종문화회관 로비에서 열린 ‘밤참: 호랑이는 살아 있다’. 지속적인 커뮤니티로 연계할 예정이다.

 ‘원형하는 몸’ 무대. 얼음을 공중에 띄워 물이 떨어지는 소리를 사운드로 활용했다.

‘원형하는 몸’ 무대. 얼음을 공중에 띄워 물이 떨어지는 소리를 사운드로 활용했다.

선호하는 재료나 마감 기법이 있나요
빛과 그림자가 잘 작용하는 재료를 선호합니다. 석재는 그 자체로 입체감이 있는 재료인데, 빛이 그런 특성을 더욱 부각시켜 주고 질감에 따라 양상이 달라져요. 돌과 나무는 시간이 갈수록 멋지게 나이가 들어 집과 함께 늙어가는 맛이 있어 즐겨 사용합니다. 스테인리스는 빛이 닿았을 때 자신의 존재를 지우고 주변을 비추는데, 이때 반사된 빛이 작지만 큰 차이를 만들어내죠.
 
 
양평 단독주택 ‘혜담헌’. 2층 대청마루에 앉아 밖을 바라보는 풍경은 1층과 또 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양평 단독주택 ‘혜담헌’. 2층 대청마루에 앉아 밖을 바라보는 풍경은 1층과 또 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영감을 주는 아티스트는
폴 세잔, 프랜시스 베이컨. 대상을 관념에 따라 표현하기보다 움직임과 빛, 다른 무언가에 영향을 받은 상태를 그려내요. 저도 공간의 변화나 움직임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작업하고요. 알바루 시자, 페터 춤토르, 카를로 스카르파처럼 빛과 재료, 사람이 만날 때 형성되는 분위기와 내러티브에 관심이 많은 건축가들도 좋아합니다.
 
 
천장 곡선과 바닥의 계단,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저마다 기능하고 어우러지며 독특한 공간감을 형성한다.

천장 곡선과 바닥의 계단,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저마다 기능하고 어우러지며 독특한 공간감을 형성한다.

 
화성 단독주택 ‘빌라 M’. 원형 계단에 빛이 닿아 만드는 그림자의 그러데이션, 테이블과 일체화된 채 살짝 어긋난 기둥이 미묘한 대조를 이룬다.

화성 단독주택 ‘빌라 M’. 원형 계단에 빛이 닿아 만드는 그림자의 그러데이션, 테이블과 일체화된 채 살짝 어긋난 기둥이 미묘한 대조를 이룬다.

당신만의 원동력은
공간을 기반으로 제가 하는 모든 일은 나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는 데서 출발했어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건축과 디렉팅, 교육 활동을 이어가고 있죠. 집은 그런 여정에 있는 중요한 수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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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윤정훈
    컨트리뷰팅 에디터 김재연
    아트 디자이너 김강아
    디지털 디자이너 김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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