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LE

1960년대 예술계는 하이퍼리얼리즘에 열광했습니다. 놀랍도록 첨예한 시선으로 일상의 소재를 바라보아 뇌리에 각인되는 이미지를 만들었기 때문이죠. 
 
이 개념이 최근 재조명되고 있는데요. 탬버린즈나 아더에러와 같은 국내 브랜드도 공간에 하이퍼리얼리즘 소재를 더해 색다른 재미를 제공하는 데 주목하고 있어요.
 
하이퍼리얼리즘을 다룬 다양한 소재 중에서도 거인조각품은 특히나 눈에 띕니다. 설치하기 어려운 만큼 공간 안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뽐내죠. 20년 전부터 공간에 거인을 들여놓아 세상에 신선한 경험을 선사한 해외 작가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왜 이야깃거리 소재로 '거인'을 선택한 걸까요?
 
 
 
거인 조각품에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작가를 꼽자면 바로 론 뮤엑(Ron Mueck). 영국을 주 무대로 활동하는 호주 작가 론 뮤엑은 극히 사실적인 조각 묘사를 통해 잉태와 삶, 죽음과 같은 보편적인 경험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예를 들어 대표작 중 하나인 ⟨Couple Under an Umbrella⟩은 파라솔 아래에 누워 쉬는 노년 커플의 모습을 그렸는데요. 실제 사람의 두 배 크기로 조각한 이 작품을 면밀히 뜯어보면 신체에 깃든 세월을 찾을 수 있어요. 갈비뼈 옆 늘어진 피부, 햇빛을 가리는 눈가의 주름 등에서 말이죠. 이처럼 각각의 의미를 담은 거인과 마주하며 관객은 자연스럽게, 혹은 예기치 못하게 인간의 본질적인 감정을 느끼게 되죠.
 
그의 독특한 배경도 창작에 영감을 주었을 법한데요. 장난감 제조업을 하던 아버지 밑에서 자랐고, 영화 특수분장과 방송용 마네킹 제작 담당으로 일한 경력이 있다고 해요. 인간과 비슷한 형태의 창의적인 비주얼을 손으로 만져온 경험이 그를 하이퍼리얼리즘으로 이끌었죠. 이처럼 론 뮤엑은 비전공자임에도 불구하고, 틀을 깨는 상상력으로 신선한 충격을 주는 조각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등을 긁고 싶은데 닿지 않아 보이는 거인. 마케도니아 조각가이자 스코페 미술대학의 조각과 교수인 자르코 바셰스키(Zharko Basheski)의 작품입니다.
 
자르코의 작품을 처음 보면 놀랄 수도 있어요. 거인이 작은 인간을 먹는 기괴한 모습이나, 거인이 바닥을 뚫고 올라오는 모습처럼 비일상적인 장면을 마주하게 되기 때문인데요. 하지만 자르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그런 비정형적인 모습에 녹아있습니다.
 
그가 고찰하는 것은 바로 ‘인간의 조건(Human Condition)’. 그는 스스로를 관찰하며 인간이 되기 위한 조건이 무엇인지를 고민합니다. 만들고자 하는 모형이 그려지면 천연 모발, 실리콘 등의 색다른 소재를 활용해 사실적인 디테일의 거인을 만들어내죠. 오히려 인간 지향적인 관점을 가졌기에 예상치 못한 포즈의 거인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네요.
 
 
다들 한 번쯤 방긋 웃는 꽃 캐릭터를 본 적이 있을 텐데요. 올해 블랙핑크와 콜라보했던 이 꽃을 그리는 이는 바로 일본의 현대예술가 무라카미 다카시 (Murakami Takashi)입니다. 무라카미도 쇼핑몰 한가운데 거인을 불러들인 적이 있죠.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시즌, 플레이스 벤돔 몰 한가운데에 등장했던 이 거인은 무라카미의 자화 조각품입니다. 그는 2012년, 카타르 박물관에서 개인 전시를 연 적이 있는데요. 당시에 전시했던 거인 조각품을 박물관 측에서 보관하고 있다가 10년 뒤에 쇼핑몰에 비치한 것이에요.
 
그림을 그릴 때 입는 멜빵바지와 가지런히 묶은 머리. 꽃 캐릭터 러그 위에 편안히 앉아 있는 이 거인은 작업실에서의 무라카미를 쏙 빼닮았어요. 쇼핑몰을 걸어 다니며 그의 작업 세계를 우연히 마주칠 수 있는 재미난 기획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