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르 페스티벌, 올해의 우승자는? || 엘르코리아 (ELLE KOREA)
FASHION

이에르 페스티벌, 올해의 우승자는?

제 38회 이에르 페스티벌에서 만난 올해의 우승자 이고르 디에릭 그리고 그를 뽑은 심사위원들을 직접 만났다.

ELLE BY ELLE 2023.11.30
지난 10월 15일, 빌라 노아유(Villa Noailles)에서 열린 시상식을 끝으로 제38회 이에르(Hyères) 국제 패션, 사진 및 액세서리 페스티벌이 막을 내렸다. 1985년에 설립된 이에르 페스티벌은 젊은 패션 디자이너를 발굴하고 그들의 커리어를 지원하는 행사다. 샤넬은 2014년부터 이에르 페스티벌 메인 파트너로 참여해 빌라 노아유와의 관계를 강화하고, 젊은 디자이너의 창의성과 아방가르드에 대한 후원을 이어나가고 있다. 또한 2019년부터 열 명의 최종 후보와 샤넬 공방과의 컬래버레이션을 지원하고 le19M 메티에 다르(le19M Métiers d’Art) 상을 시상하고 있다. 이번 페스티벌에는 깃털과 꽃, 주름, 바느질, 직물 마감을 전문으로 하는 르마리에(Lemarié) 공방과 2024년 파리올림픽 공식 유니폼 아트 디렉터인 스테판 애시풀(Stéphane Ashpool)의 전시를 기획하고, 컬래버레이션 워크숍까지 진행해 참가자들에게 직접 레이어드 깃털을 만드는 기회를 제공했다.  
 
 

내공과 스토리를 갖춘 신인 디자이너

올해는 벨기에, 스페인, 프랑스, 영국, 그리고 두 명의 한국 디자이너가 완성도 높고 흥미로운 컬렉션을 선보였는데 치열한 경쟁 끝에 제품 품질과 디자인, 유쾌한 스토리텔링이 조화를 이룬 벨기에 디자이너 이고르 디에릭(Igor Dieryck)의 컬렉션이 샤를 드 빌모랭(Charles de Vilmorin)이 의장을 맡은 프리미에르 비전 심사위원단 그랑프리와 대중상인 빌 드 하이에르, 샤넬이 주는 ‘le 19M 메티에 다르’ 상까지 3관왕을 휩쓸었다. 앤트워프 왕립미술아카데미를 졸업하고, 아크네 스튜디오에서 6개월간의 인턴십을 거쳐 에르메스 주니어 디자이너로 입사한 이 벨기에 디자이너는 “패션은 제품도 좋아야 하지만 그에 어울리는 스토리도 중요하다”는 패션 철학을 강조했다. 
 
그가 선보인 컬렉션 ‘예서(Yessir)’는 디자이너가 학창시절 호텔 리셉션 아르바이트로 일하던 기억을 소환한 데서 시작한다. 호텔 로비에서 만난 캐릭터에게서 영감받은 위트 있는 컬렉션에서 이고르는 “호텔에서 명확한 레퍼런스를 얻었고, 유니폼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유니폼은 생각보다 강력한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며 유니폼의 규칙과 상징성, 그것을 착용하는 사람이 세상과의 관계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탐구했다고 한다. 유니폼 코드를 트위스트해 실험적인 룩을 선보인 그의 컬렉션은 완벽한 재단을 바탕으로 곧바로 판매해도 손색없는 완성도를 구현했다. 리셉션 벨에서 영감받은 둥근 커팅의 작은 재킷, 허리 위로 올라오는 과장된 하이웨이스트 팬츠, 포멀한 팬츠 톱에 매치한 XXL 사이즈로 재구성한 데님까지 재미와 패셔너블한 면모를 두루 갖췄다. 여기에 샴페인 잔에서 영감받은 두꺼운 플라스틱 프레임의 안경, 레이스업 슈즈에 삽입된 스니커즈, 내장형 가방에 붙인 장갑까지 액세서리 라인을 완벽하게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재기 발랄한 아이디어와 스토리, 이를 구현하는 메이킹 능력까지 갖춘 새로운 디자이너의 출발을 엿보는 순간이었다. 
 
 

젊은 예술가들을 위한 지지

빌라 노아유에서 열린 이에르 페스티벌은 파격적인 심사위원 선정으로도 유명하다. 과거 칼 라거펠트와 존 갈리아노, 장 폴 고티에 같은 거장부터 하이더 애커만, 글렌 마틴스 같은 기성 디자이너가 이 페스티벌의 심사위원으로 활약했다. 결선에 진출한 젊은 디자이너들이 쟁쟁한 심사위원들의 경험과 조언을 얻기 위해 빌라 노아유로 몰려들었다면, 올해는 MZ세대 대표 디자이너인 샤를 드 빌모랭이 심사위원 의장으로 선정돼 이목을 집중시켰다.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를 론칭한 지 3년 차인 디자이너를 심사위원장으로 선정한 배경에는 ‘관대함’과 ‘나눔’이라는 지중해의 오랜 가치를 반영하기 위한 결정이었다고 한다. 빌라 주인이던 샤를과 마리-로르 노아유(Charles & Marie-Laured-Noailles) 부부가 살바도르 달리와 알베르토 자코메티(당시에는 알려지지 않은 젊은 예술가들)를 지지했던 정신은 페스티벌을 통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심사위원장을 맡은 샤를 드 빌모랭과 또 한 명의 심사위원이자 샤넬의 드레스 공방 팔로마(Paloma) 디렉터 레지나 웨버(Regina Weber)를 만났다.
 
 

샤넬 드레스 공방 팔로마 디렉터, 레지나 웨버(Regina Weber)

이에르 페스티벌에 참여했던 디자이너였지만 지금은 샤넬 소속 팔로마 공방 대표로서 페스티벌을 방문했다
2018년부터 매년 이곳을 방문하고 싶었다. 파이널리스트들의 작품을 보면서 당시 내가 느꼈던 무수한 감정을 되새기는 중이다.  
 
파이널리스트와의 협업은 어떻게 진행되나
사전에 디자이너와 만나 그들이 하고 싶은 작업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올해는 한국 디자이너 민보권과 협업했는데, 그의 포트폴리오를 보고 곧바로 사랑에 빠졌다. 블랙 컬러를 강렬하게 표현한 건축에서 영감받은 작품이 맘에 들었고, 팔로마가 구현해 낼 수 있는 부분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파이널리스트들과 협업을 진행할 때 과거의 경험이 도움이 됐나
다양한 공방과 작업하는 건 디자이너로서 큰 행운이다. 나 역시 그것이 얼마나 큰 경험이자 특혜인지를 잘 알고 있기에 그들과의 협업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번 협업은 패턴 전문인 팔로마 공방에도 큰 도전일 것 같다
팔로마 공방은 패턴뿐 아니라 패션에서 필요한 형태를 만들어내는 모든 일에 관여한다. 그간 공방에서 다루지 않았던 작업에도 도전하고 구현해 내는 게 우리 임무다. 샤넬과의 작업 역시 기존 테크닉에 국한되지 않고 한 단계 발전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이기 때문에 매번 도전하는 느낌이다.
 
새로운 테크닉을 만들어내기 위해 공방에서는 어떤 노력을 하나
항상 새로운 것을 배우고, 그것을 우리 공방 스타일과 기술로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한다. 여기에는 우리가 이전에 사용하지 않았던 재료나 기술이 포함된다. 그러기 위해선 각각의 프로젝트를 자세하게 경청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5년 동안 팔로마 공방을 이끌어오고 있는데, 디자이너로서 과거에 비해 달라진 점이 있다면
5년 전의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됐다. 지금의 나는 공방의 모든 노하우와 연결돼 있다. 당시엔 혼자만의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다면, 지금은 내가 하는 일을 많은 사람과 공유하는 커다란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다. 나는 이 커뮤니티 속에서 성장해 왔고, 앞으로 더 발전하게 될 것 같다.
 
 

패션 디자이너, 샤를 드 빌모랭(Charles de Vilmorin)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기 전에도 이에르 페스티벌에 대해 알고 있었나
오래전부터 페스티벌에 대해 알고 있었고, 4년 전에는 포트폴리오를 보내기도 했다. 물론 떨어졌지만(웃음). 이곳을 찾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페스티벌 참여 열기가 대단하고,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것도 엄청난 행운이다.
 
열 명의 파이널리스트를 결정하고 오늘 아침 그들의 컬렉션을 직접 봤다. 소감은
상상했던 것과 많이 달랐다. 그들의 스토리텔링을 직접 들을 수 있어서 눈으로 보는 것과 또 다른 감동이 느껴졌다. 디자이너의 스토리텔링이 전혀 다른 감동을 주는 뜻밖의 컬렉션도 있었고, 내가 생각한 것과 많이 다른 컬렉션도 있어서 혼란스러웠다(웃음). 마지막 승자를 결정하는 일이 매우 힘들 것 같다.
 
프레젠테이션 때 모든 심사위원이 직접 컬렉션을 만져보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들었다
그냥 앉아서 컬렉션을 감상하고 평가하고 싶지 않았다. 컬렉션 소재를 직접 만져보고 디테일을 확인하는 것도 필요했고, 디자이너들과 가까이 교류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모든 심사위원이 동의해 줬고, 심사보다 열띤 교류의 장이 된 듯하다.
 
컬렉션을 평가하는 나름의 잣대가 있다면
개인적 잣대나 기준은 없다. 열 명의 디자이너가 워낙 뛰어나고 개성이 다르기 때문에 특별한 기준으로 판단하기는 어렵다. 참가 디자이너들과 만나고 교류하면서 특별한 감정이나 감동이 만들어지느냐가 평가에 주요하게 반영될 것 같다. 음악은 중요한 영감이기 때문에 디자이너들이 패션쇼에서 어떤 음악을 선택했는지, 음악이 그들의 컬렉션 분위기에 어떻게 쓰였는지 집중적으로 보고 들었다. 옷도 중요하지만 디자이너로서 쇼를 어떻게 구성하는지도 그들에게 필요한 능력이다.
 
당신도 젊은 디자이너에 속하는데, 페스티벌에 참가한 디자이너들을 보면서 특별한 감정을 느낀 게 있다면
열 명의 파이널리스트 중에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디자이너도 있다. 그들의 작품을 평가하기보다 그들과 대화를 나누고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장으로 생각했다.
 
참가한 디자이너들에 대해 페스티벌에 오기 전과 후가 다를 것 같다
열 명의 참가자들이 디자이너로서 오랫동안 가져가야 할 비전을 듣고 싶었고, 나 역시 디자이너로서 한 단계 성장한 느낌이다. 단순히 심사 과정에서 만난 관계에 그치지 않고 오랫동안 교류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들고 싶었다.
 
이에르 페스티벌에 참가하려는 디자이너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무엇보다 자신에게 솔직해야 한다. 오늘 아침에 만난 한 디자이너는 자신의 아픈 경험을 공유하고 그것을 패션으로 풀어냈는데, 그 모습이 아름다웠다. 자신에게 솔직하고, 타인에게 마음을 열고 나누는 과정이 패션에도 필요하다. 꾸미지 않은 것에서 오는 감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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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컨트리뷰팅 에디터 김이지은
    Courtesy Of Chanel
    아트 디자이너 김려은
    디지털 디자이너 장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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