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송이라는 저주의 역사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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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송이라는 저주의 역사

박세회 BY 박세회 2024.03.25
 
서울살이 10년 차, 어쩌다 보니 어린 시절 로보트 태권 브이가 뚜껑을 열고 하늘로 치솟던 장면의 배경으로 익숙한 국회의사당 앞에 살게 됐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 보면 창문으로 국민의힘 당사 빌딩 로고의 ‘국’ 자가 정면에 보이고, 지하철을 타러 가다 보면 더불어민주당의 당사를 지나친다. 말 그대로 대한민국 정치의 꼭짓점이다. 그래서 종종 뭐랄까, 세상의 중심에서 사는 아주 조금의 우쭐함을 느끼지만, 우쭐함보다는 불편해서 죽겠는 게 더 많다. 11시가 되면(그렇다. 다른 곳보다 1시간이 빠른 11시가 여의도의 점심시간이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여의도 직장인들의 인파에는 이제 익숙해졌다. 그러나 거리를 점령한 수많은 정치 구호와 이동을 방해하는 시위에는 아직 적응 중이다. 오늘도 보수단체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4절까지 불러대는 애국가를 들으며 잠에서 깨고,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 음악을 들으며 분노를 삭인다.
시각 공해는 눈을 감으면 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소음은 벽을 넘고 건물을 에둘러 나를 괴롭힌다. 작업 공간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다 보면 창가를 통해 낯익은, 그러나 매우 느리거나 빠르게 그리고 보통은 단순하게 변형된 멜로디가 들려온다. 언제부터 그 자리에 있었는지 짐작하기 어려운 두 당사 앞 천막은 종종 임시 노래방으로 업종을 변경해 나의 궁금증을 자극하고, 자료로만 찾아 들었던 민중가요 합창은 시간이 지나도 절대 변치 않는 노랫말과 선전가요 같은 선율의 강인함으로 감탄과 통탄을 자아낸다. 결정적으로 놀라운 순간은 대중음악 히트곡을 기상천외하게 편곡하여 합창하는 목소리다. 놀랍게도 그 노래들은 트로트가 아닌 경우가 많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익숙한 멜로디에 귀를 기울이다 그 노래가 콜드 플레이의 영원한 엔섬, 21세기 최고의 찬가인 ‘Viva La Vida’를 번안한 멜로디라는 사실에 놀라 까무러칠 뻔하기도 했다. 프랑스혁명을 모티브로 절대군주의 몰락을 그린 이 노래는 2017년 탄핵 선고일 전에 광화문광장에 크게 울려 퍼져 우리의 눈시울을 적시기도 하지 않았던가. 그 노래가 2024년 여의도에 울려 퍼지고 있으니 어떻게 개사했는지 너무도 궁금해 작업을 그만두고 뛰쳐나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경선이 끝나고 본격적인 선거유세가 시작되며 전국이 노래 몸살을 앓을 것이고 그중 여의도는 가장 크게 아플 것이다. 현대 한국의 선거운동은 사실상 공해에 가깝다. 유세차 확성기에서 발생하는 소음은 비행기 이륙 시에 측정된다는 100데시벨을 훌쩍 넘는 127데시벨에 육박한다. 대통령 및 시도지사 후보의 경우 150데시벨이다. 영화 〈검사외전〉 속 제시 마타도어의 ‘붐바스틱(Bombastic)’에 춤을 추는 강동원이 유세를 한다고 해도 참기 어려운 수치다.
원죄는 19세기 미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영전쟁 참전 장군으로 1840년 대통령선거에 출마한 윌리엄 헨리 해리슨은 무뚝뚝한 전쟁 영웅 이미지를 벗기 위해 거친 사과술을 마시고 통나무집에 사는(Hard Cidar and Log Cabin) 서민 후보라 포장하는 한편, 아메리칸인디언과의 티페카누 전투를 과장하여 역사에 남을 선거곡 ‘티페카누와 타일러도(Tippecanoe and Tyler Too)’를 발표했다. 본인을 치켜세우고 현직 대통령이자 민주당 후보였던 마틴 밴뷰런을 비웃는 곡이었다. ‘밴, 밴, 밴… 밴은 쓸모없는 사람이에요.’ 덕분에 해리슨은 어렵지 않게 선거에서 승리했다. 정작 그는 비가 쏟아지는 취임식 날 68세 노구를 이끌고 8500단어에 달하는 연설을 하는 바람에 취임 한 달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현대적인 선거유세곡 활용 사례에서 빼놓을 수 없는 두 인물이 있다. 빌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다. 빌 클린턴은 당시 현직 대통령이자 걸프전쟁을 승리로 이끈 아버지 부시 대통령에게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고 일갈하며 플리트우드 맥의 히트곡 ‘멈추지 마(Don’t Stop)’를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내일에 대해 생각하는 걸 멈추지 말아요. 전보다 더 좋을 거예요. 어제는 갔어요.’ 절묘한 가사와 밝은 메시지 덕에 클린턴은 대통령에 당선됐고, 해체한 밴드는 취임식에 등장해 이 노래를 부르며 민주당의 승리를 축하했다. 이후 선거유세 과정에서 음악을 활용하는 과정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트러블메이커 도널드 트럼프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트럼프는 역사상 처음으로 음악가들의 대대적인 보이콧에 직면한 인물이다. 미국을 대표하는 대재벌인 그가 러스트벨트 노동자들과 레드넥을 결집하기 위해 선택한 곡은 롤링 스톤스의 ‘원하는 걸 언제나 가질 수는 없어(You Can’t Always Get What You Want)’였다. 하지만 트럼프는 다 가질 수 없었다. 믹 재거와 키스 리처드는 소송까지 불사하겠다며 트럼프를 맹비난했다. 다시 선거에 도전하는 2024년에도 음악가들의 지지를 받기는 요원해 보인다. 트럼프를 거부한 음악가들은 다음과 같다. 브루스 스프링스틴, 엘턴 존, R.E.M, 패닉 앳 더 디스코, 건스 앤 로지스, 리아나, 레너드 코언, 톰 페티, 프린스. 물론 트럼프는 무시로 일관한다. 그답다.
한국의 선거유세곡은 암울한 시대 민중의 입에서 깨어났다. 이승만 자유당 정권의 폭거에 맞선 민주당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해공 신익희와 유석 조병옥 두 후보가 세상을 떠나는 악재를 맞았다. 절망하며 당대 인기 영화 〈유정천가〉의 주제가를 개사해 따라 불렀다. “가련다 떠나련다 해공 선생 뒤를 따라 / 장면 박사 홀로 두고 조 박사도 떠나가네”. 민심의 경고에도 자유당 정권은 부통령 이기붕 당선을 위해 3.15 부정선거를 저질렀고, 결과는 4.19혁명이었다. 그래서인지 선거 노래 중 인상 깊은 곡의 주인은 진보계 정당의 것인 경우가 많다. ‘DOC와 춤을’을 개사해 한국 최고의 선거유세곡으로 만든 김대중 전 대통령, 기타 한 대로 담담히 ‘상록수’를 노래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떠오른다.
사실 그 외의 노래들은 모두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제 슬슬 시작되고 있는 선거유세들을 보면 선심성 공약 남발과 상대 후보 헐뜯기, 폭력과 참회의 고성이 난무하는 일장연설이 대부분이다. 선거 노래의 선곡과 개사의 수준을 따지자면 참담하기 그지없다. 박진영이 원더걸스의 ‘텔미’에 쏟아진 정치권의 러브콜을 거절하고, 이정현이 ‘바꿔’를 선거송으로 쓰지 못하게 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선거송은 좋은 노래를 망치는 지름길이다. 다섯 살 유치원생 꼬마 시절에 흥얼거렸던 ‘김대중과 함께라면 든든해요’는 지금의 선거송들에 비하면 걸작이다. 귀여움과는 백만 광년 떨어진 대통령 후보가 ‘귀요미송’을 부르던 것을 생각해보라. 케이팝 산업의 민낯을 상품화한데다 투표조작 논란까지 따라온 엠넷 〈프로듀스 101〉의 ‘픽 미(Pick Me)’를 부르며 빈곤의 철학 혹은 철학의 빈곤을 그대로 답습해 전시하기도 한다. 그런 노래들을 만드는 제작 비용과 복제권, 저작권 지급에는 만만찮은 금액이 들어간다. 그 보전비용들이 다 우리가 낸 세금이다. ‘애통’, 말 그대로 심장이 아프다.
한국에선 선거유세곡을 만들어주는 사이트가 있다. 그 사이트는 ‘유권자의 귀를 즐겁게 하는 선거송’이라며 잠재적 고객, 아마도 이 경우엔 후보자들을 유혹한다. 유권자의 귀를 즐겁게 하는 선거송은 없다. 다시 말하지만, 그런 것은 없다. 차라리 문재인 전 대통령이 고향 부산에서 ‘부산갈매기’를 열창한 것처럼, 시대와 맥락에 맞는 곡을 골라 퍼포먼스를 펼치는 편이 낫다. 안타깝게도 긴 시간 동안 정치계가 음악에 보여준 무지와 소음으로 안긴 고통을 생각하면 요원해 보인다. 음악으로 울림을 주는 일이 이토록 어렵다. 그러니 당신이 만약 진짜로 세상을 바꿀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고 싶다면 침묵 유세를 해보는 건 어떨까? 마치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행위예술 작품이나 존 케이지의 4분 33초처럼 말이다. 일단 나는 그 사람에게 투표할 것이다.
 
김도헌은 음악웹진 IZM의 에디터부터 편집장까지 맡았던 대중음악 평론가로, 음악 웹진 제너레이트를 운영하고 있으며, 한국대중음악상(KMA) 선정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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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박세회
    WRITER 김도헌
    ILLUSTRATOR MYCDAYS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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